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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초기 그리스 문학과 황금기

by 길쓸별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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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학

서양 문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향력이 큰 문학. 고대 그리스 문학은 라틴문학으로 시작되는 이후의 서양 문학에 모범이 되었다. 그리스 작가들은 서정시, 서사시, 비극, 희극, 철학적·에세이와 대화록, 전기적 사극, 서간문 등 많은 문학 장르를 만들었다.

<초기 그리스문학>

- 서사시

서사시는 그리스 문학에서 최초로 발생한 주요 양식이었다. 서사시란 긴 이야기체의 시를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 신적인 존재나 영웅적인 인간의 행동을 다루었다. 초기 그리스 시인으로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가 있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50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을,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라는 그리스 영웅이 트로이 멸망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모험을 담았다. 이 서사시는 500년 이상 계속된 시낭송의 긴 전통의 덕을 입은 것으로, 리라라고 부르는 현악기에 맞추어 가수들이 노래하는 옛날이야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일리아스><오디세이아>는 명예와 용맹의 이상을 강조한 것으로 그리스 문학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문화와 교육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교훈 서사시의 창시자인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 이후 첫번째 주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기원전 7세기에 활약한 헤시오도스는 시 <신통기>에서 그리스신화를 포괄적인 철학으로 체계화했다. 헤시오도스는 그 밖에도 <노동과 나날>을 썼다. 그리스 농민의 삶을 묘사한 이 작품은 노동과 근면의 필요성과 농민들의 높은 식견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는 호메로스의 견해와는 다르게,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는 것만이 영웅은 아니라는 헤시오도스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그 자신도 농부였던 헤시오도스는 땅과 악천후에 대항해서 오랫동안 투쟁해온 농민들을 영웅으로 높이 평가했다.

- 서정시

대략 기원전 650년 이후 서정시라고 부르는 짧은 시가 서사시를 대신하게 되었다. 서정시는 원래 리라의 음악에 맞춰 불렀으며 대부분 서사시의 특징을 이루는 영웅들의 행위 대신에 사랑의 열정 같은 개인의 내면 감정을 담아냈다.

서정시의 한 갈래로 가창시가 있다. 가창시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며 교훈적이거나 풍자적인 요소는 없었다. 애가나 풍자시와는 달리 가창시는 한 명이 부르도록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가까운 친구끼리의 사적인 모임에 앞서서 시인이 시를 노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기원전 6세기의 여성 시인인 사포는 가장 유명한 가창 시인이었다. 사포의 시가 주는 열정과 비극적인 느낌은 다른 어떤 시보다도 뛰어났다. 그리스의 서정 시인들은 음악과 춤을 곁들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합창 서정시도 지었다. 육상경기의 승자를 기리기 위한 합창 송가에피니키온도 인기가 있었다. 핀다로스가 지은 승리의 송가는 합창시의 대작으로 평가한다.

<황금기>

기원전 6세기 후반 아테네는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지위는 2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절정기인 기원전 461년에서 431년까지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은 매우 융성했으며 이를 그리스 문학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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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도 비극은 황금기에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였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의 3대 거장이었다. 아이스킬로스의 극은 진지함, 장엄한 언어, 사상의 복잡성으로 유명했다. 소포클레스는 성격 묘사, 우아한 언어, 극에 여백을 주거나 내용을 조화롭게 배율하는 감각에서 탁월했으며, 에우리피데스는 '무대의 철학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인간의 감정과 열정의 심리학적 영역을 탐구했다.

희극 또한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고희극의 작법으로 작품을 썼던 아리스토파네스는 외설스럽고 풍자적인 희극을 쓴 위대한 작가였다. 이 희극들은 당시 아테네인들의 자유와 활력과 의기양양함, 그리고 그들 자신을 두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보여준다. 아테네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진 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어 정치·사회적으로 풍자의 요소가 있는 '고희극'을 더이상 쓸 수 없었다.

희극은 기원전 4세기 후반까지 아테네에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신희극이라는 새로운 문체로 썼다. 이 희극은 사람들이 매일 부딪치는 문제와 개인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작가로는 메난드로스가 가장 인기 있었다.

- 역사서

기원전 5세기 말엽부터는 산문이 그리스 문학에서 시와 시극보다 우세해지기 시작했으며 그중 역사적인 산문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 중반 문명 세계 전역을 둘러보고 그리스보다 오래된 국가들의 생활 방식과 풍습을 기록했다. 헤로도토스는 특히 동방과 서방의 분쟁에 초점을 맞췄다. 헤로도토스보다 몇 년 후에 나타난 투키디데스는 최초의 과학적 역사가로 볼 수 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당시의 사건들을 보고하면서 투키디데스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정치가 끼친 영향을 설명하고자 했다.

- 철학서

기원전 450년경에는 '소피스트'라고 부르는 일군의 철학자가 나타나 유명해졌다. 소피스트는 지식에 관한 이론을 가진 학자와 선생을 말한다. 그들은 '수사학'이라는 설득력 있는 말 표현법이나 작법을 뜻하는 문학적으로 중요한 부문을 만들어냈다. 소피스트들의 활동은 아테네에서 시를 능가하는 산문의 발흥을, 그중에서도 특히 웅변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소크라테스(Isocrates)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와 같은 유명한 웅변 작가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기원전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은 새로운 문학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것은 중요한 진리에 도달하고자 소크라테스가 고안한 문답법을 한층 발전시킨 것으로 '철학적 대화'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사상은 플라톤을 위시한 제자들이 쓴 대화록으로 보존되었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학파 등의 철학 집단들은 플라톤의 글에 담긴 관심사를 반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 비평의 걸작인 <시학>을 포함해서 중요한 저작물을 많이 남겼다.

 

본 내용은 <최봉수/2007/21세기 웅진학습백과사전/웅진(전집)출판부(웅진다책)/1권>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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