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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독일 문학의 과도기/제 2의 황금기

by 길쓸별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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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1250-1750)>

- 대중문화

1250년부터 17세기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의 기사 계급이 몰락하고 중류층 사람들이 다음 시대의 문화를 이끌어나갔다. 13세기의 낭만적 이상주의가 물러나고 중류층의 사실주의와 합리성, 그리고 풍자가 뒤를 이었다. 가령 정원사였던 베른헤어(Wernher)가 쓴 <마이어 헬름브레히트Meier Helmbrecht> 같은 서사시는 기사 계급의 타락을 묘사한 작품이다. 실제적인 교훈의 수단으로는 우화가 인기를 끌었다. <여우 레이너드>와 같은 풍자적인 서사시와 <틸 오일렌슈피겔 Till Eulenspiegel> 같은 유쾌한 농담은 많은 갈채를 받았다.

15세기와 16세기에 들어와 '악장(樂長)'이라고 부르는 시인들이 미네젱거의 서정시를 복원하려고 했다. 뉘른베르크 출신의 제화공이었던 평범한 악장인 한스 작스(Hans Sachs)의 시와 희곡은 문학을 생산하려고 노력한 독일 중류층의 노력을 보여주지만 세련되지 못한 단점이 있다.

- 르네상스

독일에서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르네상스의 이념인 정신적 재생이라는 관념이 완성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비슷한 문예부흥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르네상스의 두 가지 특징인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은 독일어 사용권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인문주의'1350년경에 보헤미아의 대학 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5세기경에 요하네스 폰 자츠(Johannes von Saaz)가 쓴 <보헤미아의 쟁기꾼>이다. 인문주의는 1480년부터 1530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다.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성의 새로운 이상을 찾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역사를 탐구했다. 그들은 대부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글을 썼다.

에라스뮈스는 가장 선구적인 인문주의자였고, 히브리어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요한 로이힐린, 마르틴 루터와 절친한 친구였던 필리프 멜란히톤, 열렬한 국가주의자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대자였던 울리히 폰 후텐 등의 인문주의자들이 있었다.

1517년에 시작된 종교개혁은 그 후에도 독일의 생활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 기간에 발표된 문학작품은 주로 종교적 에세이와 팸플릿이었다.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표준 독일어의 기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개혁 강령을 옹호하기 위하여 논문을 썼다. 토마스 무르너는 종교 문학적으로 루터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었다.

- 바로크 문학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종교전쟁으로 인해 17세기의 문학은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때의 문학을 일컬어 흔히 '바로크 문학'이라고 하는데, 바로크 문학은 허황되고 과장된 내용이 많았다. 또한 이 당시에는 강력하고도 애원하는 듯한 교회의 찬가가 번성했다.

이때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그리피우스(Andreas Gryphius)는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권하는 감동적인 종교시를 썼다. 그리멜스하우젠은 <모험가 짐플리씨 시무스>에서 30년 전쟁의 공포를 이겨내고 신을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은 한 영웅을 그렸다.

프랑스 고전주의는 1680년경부터 1750년경까지 독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전주의의 엄격한 규칙성 때문에 독일 문학은 창조성이 사라지고 프랑스 문학을 천박하게 모방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2의 황금기 (1750~1830)>

18세기 후반기부터 19세기 전반기 동안 독일의 예술은 전성기를 맞았다. 문학에는 괴테, 철학에는 칸트, 음악에는 베토벤 같은 인물이 있어서 독일 역사에서 가장 풍성한 문화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독일 문학은 처음으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으로 전해져 명성과 위력을 떨쳤다.

- 계몽주의

계몽주의는 18세기 후반에 독일로 유입되었다. 독일 문학가들은 유럽을 휩쓴 개혁 정신에 사로잡혔다. 문학에서의 계몽주의는 국민성의 소생과 프랑스 영향의 거부라는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최초의 문학비평가 레싱은 독일 국민문학의 토대를 닦은 장본인이었다. 레싱은 프랑스 고전주의가 아닌 고대 그리스를 모범으로 삼았으며 그리스 문학의 절제와 셰익스피어 문학의 탁월함을 본받아 희곡을 썼다. 레싱의 희곡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현자 나탄>은 종교적 관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계몽주의의 정신은 또한 빌란트(Christoph Martin Wieland)에게서도 나타난다. 소설과 운문 서사시를 통해 빌란트는 이전의 그 어떤 시인보다도 독일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 질풍노도 운동

독일어로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이라고 부르는 질풍노도 운동은 1770년경에 프랑스의 형식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했다. ‘() 낭만주의자라고 하는 새로운 문학가들은 문명 대신 자연을, 모방 대신 독창성을, 아이러니 대신 종교를, 예의범절 대신 열정을 부르짖었다.

클롭슈톡(Friedrich Gottlieb Klopstock)이 이 운동의 선구자였다. 1748년부터 1773년 사이에 출판된 클롭슈톡의 종교 서사시 <구세주>는 그리스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희열이 넘치는 언어를 사용했다. 당대의 민요를 열렬히 찬미한 헤르더는 이 운동의 철학적 지도자가 되어 프랑스의 고전주의에 반대하면서 독일의 국민문학 작품을 옹호했다.

헤르더의 작품은 젊은 괴테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괴테와 극작가인 실러는 질풍노도의 문학가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낭만적인 초기 작품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 그리고 실러의 희곡 <군도>가 있다. 이후 이 두 문학가는 그리스문학의 고상하면서도 단순한 점과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7년부터 1805년까지의 고전주의 시대에는 괴테의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헤르만과 도로테아>, 그리고 실러의 <발렌슈타인><빌헬름 텔>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괴테의 후기 작품은 좀 더 철학적이고 상징적이다. <파우스트>(1832) 2부는 괴테 말년의 주요 작품이다.

- 낭만주의

독일의 낭만주의는 질풍노도 운동으로부터 시작해 1790년부터 1830년까지 독일 문학을 지배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세계(世界苦 Weltschmerz)'를 소개했다. 나폴레옹의 독일 정복으로 인해 독일 시인들은 염세주의로 돌아서서 '세계'라는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이 시인들은 감정적이고도 주관적인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했다. 많은 시인들이 당시의 사회로부터 국가의 과거, 특히 영광스러운 중세시대로 눈을 돌렸다. 또한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우화와 동화가 많은 낭만주의자들을 사로잡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인해 독일 문학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독일 문학의 초기 번역가로는 영국의 문학가 월터 스콧 경과 토머스 칼라일이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는 1830년경에 이르러 소멸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계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August Wilhelm Schlegel)과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형제는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이끌었고 그들의 문학 비평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노발리스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와 레나우(Nikolaus Lenau) 같은 우울한 시인은 낭만주의자들의 염세주의와 절망을 표현했다.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19세기의 가장 뛰어난 자연 시인이었다. 클라이스트와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는 낭만주의 시대의 선구적인 극작가였다. 호프만은 환상과 공포에 근거한 소설을 썼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와 아르님(Achim von Arnim)은 민화 분야에서 독일 문학에 기여했다. 그들의 책 <소년의 요술 피리 Des Knaben Wunderhorn>(1805-1818)는 독일민요를 체계적으로 모아놓은 최초의 작품이었다. 또한 19세기 초에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는 민화를 모아 <아동과 가정의 동화 Kinder-und Hausmarchen>라는 동화집을 펴냈다.

본 내용은 <최봉수/2007/21세기 웅진학습백과사전/웅진(전집)출판부(웅진다책)/1권>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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